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키 헨더슨 (문단 편집) == 주요 기록 == [[http://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h/henderi01.shtml|그의 경이적인 기록들]] 통산 성적은 '''득점(2,295점)''' 역대 1위, '''도루(1,406개)'''[* 당연하지만 세계 1위 기록이며, 통산 1,000도루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 유일, 세계에서 단 2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 나머지 1명은 바로 [[일본프로야구]] [[한큐 브레이브스]]의 황금기를 이끈 슈퍼스타 [[후쿠모토 유타카]].] 역대 1위,[* 2위는 938개의 루 브록으로 헨더슨의 기록이 1.5배이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통산기록 중에서 1위와 2위의 차이가 가장 큰 기록이다.][* 물론 위와 같이 누적 개수로 비교해 볼 수도 있지만 비율로 보면 1위와 2위의 차이가 가장 큰 누적 기록은 [[배리 본즈]]의 통산 고의사구 1위(688개)로서 2위 [[알버트 푸홀스]]의 기록(302개)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푸홀스의 몰락을 생각하면 이 간격은 절대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는 약쟁이가 약빨 최대로 땡겨서 뻥튀기한 기록이니만큼 실질적으로는 도루 기록이 가장 압도적인 기록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 통산 볼넷(2190개) 역대 2위,[* 1위는 [[배리 본즈]]다. 그래도 역대 고의적이지 않은 볼넷 수(2129개)를 계산하면 베리 본즈보다 우위에 있다. 통산 2000볼넷을 넘긴 우타자는 헨더슨이 유일하다.] 통산 안타(3055개) 역대 21위, 타율 0.279, 출루율(0.401) 역대 56위, 장타율 0.419, OPS .820, 순장타율 .140, BB/K 1.29, wRC+ 132이며, 단일시즌 역대 2위인 130도루(1982)[* 1위는 138개인 [[휴 니콜]]이다(1887). 다만 이쪽은 과감한 주루플레이나 역도루 (3루에서 2루, 2루에서 1루로 귀루하는 주루플레이)까지 도루로 쳤었던 시대였고, MLB가 창설되기 전에 나온 기록이기 때문에 기록 자료가 있긴 하지만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리키 헨더슨이 단일시즌 도루 1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도루왕은 무려 12회. 첫 도루왕은 2년차이던 1980년에, 마지막 도루왕은 20년차인 1998년에 기록했다. 2년차부터 7년 연속 도루왕, 1년 쉬고 4년 연속 도루왕으로 11번을 채우고, 6년 쉬고 마지막 도루왕을 달성했다. 39세 도루왕은 당연히 역대 최고령이다. [kakaotv(394345790)]게다가 저런 전설적인 출루, 도루능력을 가진 선수 치고는 한방도 있는 선수로 통산 297홈런을 기록했다. 20홈런을 4차례나 기록했으며 3-4-5 시즌도 두 번 기록했다. 거기에 메이저리그를 대표할만한 거포들이 기록할 만한 OPS 1.0을 넘긴 시즌도 있고(1990년 시즌), 0.9를 넘긴 것만 해도 3번이다. 또한 통산 리드오프 홈런 갯수에서 ML 1위(81개)를 기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리드오프의 고질적인 약점인 장타 생산력 역시 매우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70년도부터 92년도까지의 메이저리그는 전형적인 투고타저의 시대로, OPS 0.8만 넘겨도 슬러거로써의 가치를 인정받는 정도인데 이 선수의 경우 그 시대 동안에 0.8이하를 기록한 적이 단 한번[* 1982년: .780. 근데 이 성적으로도 OPS+ 122를 기록했다. 평균점을 가진 선수보다 22% 뛰어난 타격을 가졌다는 말]밖에 없다는 점은 가히 놀라울 지경.1990년 AL MVP, 1989년 ALCS MVP, 올스타 10회, 도루왕 12회(1980~1986,[* 1987년에는 95경기 출장에 그치며 41도루로 5위를 차지했다. 단 150경기 출장 가정시 64도루 페이스로 해당 시즌 1위인 60개를 넘어서기는 한다.] 1988~1991, 1998[* '''39세'''에 66도루를 기록했다.])의 화려한 성적을 남긴 1번 타자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나마도 출루율이나 장타율 등의 비율 스탯은 선수로서 기량이 쇠퇴한 시기에도 계속 선수로 뛰면서 까먹었음에도 이런 성적이 나왔다.[* 전성기 기준인 93년까지의 기량만으로 확인했을때 BA: .291, OBP: .406, SLG: 443, OPS+: 140, 도루성공율 81%, 볼삼비 1.42, 2139 안타/220 홈런을 기록했다. 헨더슨의 도루성공율 81%는 1류 대도라면 누구나 비슷한 수치를 기록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헨더슨은 1406개를 성공시키는 동안 저 성공율을 유지했고, 40세가 훌쩍 넘어서도 계속 도루를 시도했던 선수라는 것이다.] 또한 현재에 와서는 그 경이롭다는 베이스러닝 기록조차 실제보다 저평가(!) 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세이버매트릭스 이전 시기의 경우 UBR(도루를 제외한 타격 후 주루 능력)과 wGDP(더블 플레이 회피 능력)을 BsR에 합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 BsR 수치만 비교해도 헨더슨은 144.4로 이전 시기의 [[루 브록|원조 도루왕]](75), [[팀 레인스|호프집 계속 못가시다가 막턴에 입성에 성공한 인물]](100.6), [[조 모건|대표적인 공수겸장 2루수]](79), [[스즈키 이치로|3000안타 찍은 2000년대 최고의 리드오프]](95.3)[* 다만 이치로는 20대 중반까지 NPB에서 보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을 가볍게 제친다. 보통 한 시즌에 BsR수치를 2를 찍으면 평균보다 우수한 주자, 6을 찍으면 압도적인 주자, 8 이상은 그냥 '신'으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리키 헨더슨의 경우 8을 능가한 시즌만 무려 8번에 10을 넘긴 적이 4번 포함, 게다가 제일 높았을 때 BsR 14를 찍은 적도 존재한다.[* 1983년. 당시 최고 기록. 다만 8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리드오프 빈스 콜맨이 15.7을 기록하면서 3년만에(...) 경신되었다] 저 두 개의 값이 빠진 결과만으로도 압도적인 1위를 점유하고 있는데 저 값이 채워지면 WAR 수치가 대략 5~15 정도 더 늘어난다. 이게 채워지면 '''바로 윗 순위인 [[루 게릭]]을 제치며,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WAR 수치와 비슷하거나, 혹은 앞지른다.''' 가히 빌 제임스의 평이 과장이 아닌, MLB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단연 최정상급에 해당하는 전설적인 대선수. 리키 헨더슨의 볼넷 기록과 출루율이 경이적인 것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투수 입장에서 본즈 같이 몰린 공 주면 담장 너머로 넘겨버리는 거포 파워히터를 상대할 때는 그래도 홈런 맞는 것보다는 1루로 보내는게 나으니까 최대한 맞지 않게 거르는 방법[* 약즈시절의 본즈는 약빨고 벌크업을 하면서 파워는 업그레이드 했지만 그 댓가로 주력을 상실해 과거 피츠버그 시절의 호타준족이 아니었다. 때문에 본즈와 땅꼬마들이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2000년대 초중반, 본즈의 고의사구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고의사구가 아니더라도 발 느린 슬러거를 상대 할때는 볼넷을 줘도 상관 없다는 각오로 장타를 치기 어려운 유인구 위주의 승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타자가 약하면 약할수록 병살타 처리도 쉬워지고.]으로 상대하지만, 리키 헨더슨처럼 발이 빠른 타자는 1루를 밟는 순간 투수들의 악몽 그 자체이므로 차라리 똑같이 1루로 보낼거면 공이라도 덜 던지고 안타를 맞겠다는 식으로 상대하기 마련인데도 '''자신에게 볼넷을 내줄 의향이 전혀 없는 투수들을 상대로 이만큼의 볼넷을 얻어낸 것이다.''' [* 헨더슨의 장점은 [[용규놀이]] 스타일의 커트보다는 좁은 스트라이크존을 아주 정확히 보는 선구안에 있었는데, 이로 인해 커트 위주의 선수들보다는 선채로 삼진을 당하는 일이 많은 편이었다. 용큐놀이 분야의 최고봉은 헨더슨에 이어 역대 리드오프 출루율 2위에 빛나는 [[루크 애플링]]을 꼽을 수 있다.] 그렇게 뛰어난 성적의 선수였지만 의외로 선수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강철심장을 가졌다는 말과 달리 신체는 의외로 잔부상이 많았고, 600타석 이상 소화한 적이 9번 정도에 그친다. 프로 5년차던 1984년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 되어 4시즌을 뛰다가 1989년 [[토니 라루사]]감독의 의향[* 이 시절 오클랜드는 지금의 머니볼 이미지와는 달리 돈을 잘 쓰던 팀이었다.]으로 데뷔팀 오클랜드로 재트레이드. 그런데 오클랜드가 갑자기 재정난을 겪으면서 헨더슨을 다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하고 1995년 FA자격을 얻어 '''세번째로''' 오클랜드에 입단하지만 이미 오클랜드는 이전의 위상을 잃은 가난한 팀으로 37세인 노장 헨더슨을 장기계약할 의사가 없었다.[* 그래도 1998년에 다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하며 4번째로 애슬레틱스의 유니폼을 입는다.] 그때부터 헨더슨은 [[저니맨]]이 되어 매년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도 ~~눈으로만 야구하는~~ 현역으로 활약하며 44살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다 2003년 [[LA 다저스]]를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 사실 이 시기에 비율스탯을 엄청 까먹었고, 말년에는 장타가 아예 실종됐기 때문에 통산 스탯을 보면 그냥 똑딱이로 보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만 괜찮았던 해도 있었는데 40세 시즌이었던 1999년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메츠의 강력한 타선 덕을 봤지만 '''.315/.423/.466 12홈런 37도루'''라는 상당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2006년까지 독립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한때 [[뉴욕 메츠]]의 코치[* [[호세 레예스]]에게 주루 스킬을 가르치는 전담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다.]로도 있었지만 독립리그의 선수제안을 받고 바로 달려갔을 정도. 이정도면 야구 중독이다. 이 때문에 그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명예의 전당]] 헌액 때도 '은퇴 후 5년'이라는 자격 조건에 해당하는지를 두고서 논란이 있었다. 46세에 독립 리그 골든 베이스볼 리그를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확실히 끝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